책 속 인사이트 · 2026년 08월 12일

백만 토큰에 0.28달러, DeepSeek이 그은 참수선

7월 31일, DeepSeek이 V4-Flash 정식판 API를 열었다. 그리고 8월 3일, 이 모델은 글로벌 호출량 1위에 올라섰다. 사흘이 걸렸다.

더 눈여겨볼 지표는 그다음이다. 개발자들이 여러 모델을 붙여 쓰는 라우팅 서비스 OpenRouter의 주간 순위표에서, 상위 다섯 자리를 중국 모델이 전부 가져갔다. DeepSeek V4-Flash, 샤오미 MiMo V2.5, MiniMax M3가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0.28달러가 만든 연쇄 반응

가격은 출력 기준 백만 토큰당 0.28달러다.

이 숫자가 왜 무서운지는 반응을 보면 안다. 해외 AI 스타트업들이 기존 모델에서 DeepSeek으로 옮기면서 월 추론 비용이 60~85% 떨어졌다는 집계가 나왔다. 비용이 반토막이 아니라 5분의 1이 된 회사도 있다는 뜻이다. OpenAI는 GPT-5.6 Luna 가격을 80% 내리며 대응했다. 일본 언론은 이 모델을 ‘터무니없이 싼 제미나이급 AI’라는 표현으로 소개했다.

싸구려라서 싼 게 아니다

여기서 흔히 하는 오해를 짚고 가자. 가격이 낮으면 성능을 포기했을 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V4-Flash는 그 반대 방향으로 갔다.

이 모델의 구조는 총 파라미터 2,840억 개 중 토큰당 130억 개만 활성화하는 MoE(전문가 혼합) 방식이다. 프리뷰 버전과 아키텍처 자체는 같다. 달라진 건 사후 학습(post-training) 쪽이다. 강화학습과 도구 호출 데이터로 계속 다듬어서, 에이전트 능력을 약 6배 끌어올렸다는 게 DeepSeek 측 설명이다.

‘에이전트 능력’이라는 말이 추상적으로 들린다면 이렇게 바꿔 읽으면 된다. 시키는 대로 절차를 밟아 외부 도구를 호출하고, 중간에 틀리면 스스로 고쳐서 끝까지 가는 능력이다. 대화창에서 답변 한 번 잘 뽑는 것과, 열 단계짜리 업무를 사람 개입 없이 완주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즉 구조를 키운 게 아니라 훈련 방식을 바꿔서 성능을 올렸다. 그래서 가격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한국 마케팅팀이 다시 계산해야 할 것

첫째, “AI 도입은 비싸다”는 전제가 낡았다. 상세페이지 카피 자동 생성, 리뷰 요약, 고객 문의 1차 응대 같은 반복 업무는 이제 월 몇만 원대에서 돌릴 수 있는 영역으로 내려왔다. 작년에 견적을 뽑아보고 접었던 프로젝트라면 다시 계산해볼 만하다.

둘째, 가격이 내려간 만큼 ‘양’으로 승부하는 마케팅이 가능해졌다. 상품 하나에 카피 3개 뽑던 걸 30개 뽑아서 A/B 테스트를 돌리는 식이다. 중국 이커머스 셀러들이 이미 이렇게 한다. 콘텐츠 제작이 창작에서 물량전으로 넘어가는 지점이다.

셋째, 그럼에도 데이터를 어디로 보내는지는 따로 판단해야 한다. 가격만 보고 붙이면 나중에 곤란해지는 영역이 있다. 고객 개인정보나 내부 문서가 오가는 파이프라인이라면, 단가와 별개로 데이터 주권 문제를 먼저 정리하고 가는 게 맞다. 이건 비용 절감으로 상쇄되지 않는 리스크다.

정리

중국 모델이 성능으로 미국을 따라잡았느냐는 질문은, 사실 시장에서 이미 한 발 늦은 질문이 됐다. 지금 벌어지는 일은 같은 성능을 5분의 1 가격에 파는 사업자가 등장했을 때 시장이 어떻게 재편되는가에 가깝다.

가격 경쟁은 늘 어느 시점에 멈춘다. 하지만 한번 내려간 원가 기준선은 잘 안 올라간다. 지금 AI 예산을 짜고 있다면, 작년 기준으로 짜면 안 된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출처:
Mr. FIG AI 신문일보(2026.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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